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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물 내게도 그런날이 - 프롤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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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조회 26,422회 작성일

내게도 그런날이 - 프롤로그

1992년 초, 알싸하고 매서운 바람이 부는 겨울날 준하는 미림대 캠퍼스 학생회관 앞 커다란 게시판을 초조하고 빠른 눈으로 훑어내려가고 있었다. 죽도록 고생한 1년이었다. 준하는 고등학교 입학전까지는 내노라 하는 수재였다. 서울시 주관 경시대회에서 금상도 수상해봤고, 전국대회 경시대회에서 입상도 해봤다. 항상 전교 1등을 9년 내내 독차지했고, 선생님들과 가족, 주위의 모든 사람들은 sky는 따논 당상이라고 얘기했다. 하지만 고등학교 입학후 사정은 달라졌다. 그리 평탄하지 않은 가정생활에 사춘기시절의 방황이 겹쳐졌다. 고등학교도 전교 2등으로 입학한 준하였지만, 고1 여름방학무렵 이미 성적은 반에서 중간정도로 떨어져 있었다. 전교 2등 입학 수재가 이모양이니, 선생님들도 엄청나게 준하를 잡아 끌었다. 달래기도 하고 매도 들고 가정방문이니 뭐니 그런것도 하고... 그러나 그것 뿐이었다. 이후 준하는 계속 사춘기시절 방황속으로만 헤매어 돌았다. 키도 크고 운동도 잘하고 공부도 잘하고, 그렇다고 범생이처럼 꽁한 기질도 없어, 소위 학교 날라리들과도 나름 스스럼이 없을 정도로 대인관계도 좋았던 준하였지만, 고1 말에는 이미 성적은 전교 바닥권이었다. 단 1년이었다. 이후 선생님들도 이미 포기한듯 더이상 준하에 대해 뭐라 하는 사람도 없었다. 고2때까지 계속, 수업을 땡땡이치고, 당구장을 전전하다가, 수업후 자율학습시간때도 땡땡이치고, 술먹고 담배피고, 싸움질하러 돌아다니고, 나이트 놀러다니고, 여자애들이랑 놀고, 집에 어기적 어기적 기어들어가서, 오늘도 부부싸움에 형편없이 깨져버린 살림살이를 대충 치우고 방에 들어가 잠 한숨 붙이고, 다음날 또 학교에 가서 가방만 놓고 땡땡이 치러 다니는 일상이었다. 그러다 문득, 번쩍 정신이 차려진 한때가 있었다. 인생 이대로 살다간 그냥 종칠거 같았다. 갑자기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엄습한 계기가 있었다. 이미 고3 새학기가 시작한 즈음이었다. 이미 늦어버린것도 같았다. 하지만 준하는 꼭 대학은 들어가리라 마음먹고 다시금 공부를 시작했다. 아무리 고등학교 입학전까지 수재였다고 하지만, 이미 2년을 그냥 보내버린 준하에게, 다시금 성적을 끌어올리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 일이었다. 하지만 죽도록 다시 시작했다. 그리고 대입원서를 쓸때, 서울 소재의 낮은 대학정도는 들어갈 수 있는 성적을 만들어 놓았다. 고3 담임은 이렇게까지 열심히 한 준하를 못미더워하는 눈치가 있었다. 아니 그보다는, 그래도 이렇게까지 성적을 올려놨는데, 대학 떨어졌다고 하면, 자신의 대학 진학률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테니, 그게 두려웠다고 해야할까. 준하가 지원하고자 했던 중위권 대학을 만류하고, 가장 낮은곳으로 원서를 쓰자고 했다. 결국, 그해, 준하가 원서를 썼던 낮은곳은, 경쟁률이 상대적으로 높아져 커트라인이 30점 이상이나 높아져 버렸고, 준하는 결국 합격에 실패했다. 재수를 할 용기나 여력은 없었다. 준하는 후기를 준비해서 경기권에 있는 미림대에 낮춰 지원을 했다. 그런데 후기 시험 성적은 썩 좋게 나오지는 않았다. 지금 게시판을 빠르게 훑어 내리는 눈도 아파 죽을 지경이지만, 두근대는 가슴이 더 아파 죽을 지경이었다. 무슨 놈의 합격자 게시를 이렇게 깨알같은 글씨로 한꺼번에 와르르 써붙여 놓는지... - 우오오오~~~ 와아아아~~~ 갑자기 학생회관 앞으로 한놈이 미친듯이 뛰어다니며 소리를 지르고 있다. 저놈은 뭐야? 하자마자 그놈의 입에선 한마디가 튀어나왔다. - 합격이다~~~!!!! 쳇 좋겠군......준하의 입에서 피식 헛웃음이 튀어나왔다... 그리고 곧이어 저렇게라도 소리지르며 미친놈처럼 뛰어다니는 그놈이 부러워졌다. 있다... 장준하... 이름 석자와 수험번호가 게시판 전산공학과 란에 있었다... 저 미친놈처럼 소리를 질러볼까.... 그러나 합격을 확인한 순간, 소리칠 정도의 기쁨보다는 잠시간의 안도감을 거쳐 웬지 서글프고 우울한 감정이 들어버렸다. 휴우...갑자기 준하는 눈물이 터져나올뻔한걸 간신히 참아내며 조용히 게시판을 떠나 뒤돌아섰다. * * * 며칠을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고 죽은듯 누워만 있었다. 세면도 하지 않고, 밥도 먹지 않고, 컴퓨터도 하지 않고, 그저 눈뜨면 누워만 있다가, 잠깐씩 화장실 다녀오며 물만 마시고 또 누워있다가, 잠이 들었다. 또 깨서 죽은듯 누워있다가, 물만 마시고, 또 잠이 들었다... 며칠이 지나자 몸에 힘은 없었지만, 그런대로 마음이 추스려졌다. 그래, 대학에 입학했다. 이제 열심히 학교생활하고, 졸업하고, 사회에 나가고, 직장도 잡겠지... 며칠이 지나고, 다시한번 대학교에 가서 간단한 면접을 통한뒤, OT 일정이며, 개강 일정, 신입생 교육 일정, 제출 서류, 학교 안내 등등이 한묶음된 서류가 집으로 날라들어왔다.